[Book] 완벽한 아이 (The Only Girl / Derrière la grille)
책을 읽으며
부끄럽지만 요즘 들어 구매 후 열어보지 못하고 쌓아둔 IT 도서가 늘어나고 있다. 더는 기술관련 도서를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그렇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책들을 읽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는 열심히 일하시는 마켓터분들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러던 중 이번 달에는 소설가 김영하 님이 운영하시는 북클럽에서 추천해준 도서를 몇 권골라 주문하였다.
완벽한 아이의 원제는 [Derrière la grille]로 영어로 번역하면 [behind the grid]이고, 미국에서 출간된 도서의 제목은 [The only girl in the world] 이다. 조금씩 느낌과 관점이 다른 제목들을 알고 나니 처음에 느꼈던 감상이 조금씩 변해간다. 그리고 다음엔 책의 원제 의미를 알고 나서 책을 읽겠노라 또다시 되뇌인다. ( 이전에 읽어던 [초예측, 부의미래] 를 읽고 내용이 이상해서 원제를 찾아본 뒤 납득했던 때 처럼 말이다. 그 책의 원제는 [욕망의 자본주의] 였다 )
줄거리
이 책의 화자는 모드 줄리엥으로 모든 사건들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작가이다. 그녀의 아버지인 루이 디디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업가이자 동시에 프리메이슨의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로 자신이 생각하는 초인(완벽한 아이)을 만들기 위해 철저히 계획한다. 우선 외부의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들을 일컫는 양 떼들과 격리하기 위해 집 내부의 교육 시스템을 자신의 아이에게 제공해주기로 하는데, 그 계획의 첫 부분은 자신의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을 자신이 키우고 교육하게 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모드는 여섯살 자닌을 시골 광부로부터 데려오고 철저히 자신의 아이를 위해 교육하게 한다. 정작 루이 자신은 대학도 나오지도 못했고 자신의 아이를 가르칠 능력도 되지 못했기 때문에 자닌들 교육자로써 키운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게 키운 자닌으로부터 생일까지 맞춰가며 자신의 아이를 낳는다. 점성술은 믿지 않지만, 자신과 동일한 우수한 궁수자리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루이 디디에와 자닌은 모드에게 굉장히 가학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교육을 시킨다. 아이러니하게 아버지 루이는 프랑스군 파일럿으로 세계대전에 참여하여 히틀러와 싸우지만 자신의 철학이나 교육방식은 그들을 추종하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을 초인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 같이 높은 도수의 술을 먹게 한다거나 어둠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훈련을 한다거나 만약 수용소에 갖혔을 경우를 대비해 다양한 악기를 가르치는 것과 같이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허무맹랑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자닌은 자신의 딸 모드를 위해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위대한 디디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모드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도구인 것이지 딸로써의 애정이나 관심은 없다. 유일하게 자닌이 자발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그마저도 루이에게 들켜 라디오가 부서지기도 한다. 집 안에 갇혀 생활하는 것은 모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닌은 모드가 떠난 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루이가 죽은 뒤 자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모드는 네 살에 철창으로 높은 문과 담으로 둘러쌓인 집에 갖히게 된다. 외부와 단절되어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그리고 외부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는것도 불가능하다. 집 안에서의 생활은 그 나름대로 매우 바쁘다. 새벽같이 일어나 어머니와 식사를 한 뒤 아버지를 제시간에 깨우고 시중을 든다. 아버지의 소변을 보는 소변 병을 들고 그것을 비우는 것도 모드의 일이다. 그 뒤로 자닌으로부터의 학습과 외부 음악선생으로부터의 음악수업, 정원을 가꾸거나 도축을 하는 것을 돕는 등의 노동을 한다. 그리고 잠이 들기 전 한 시간 반정도 독서를 할 수 있는 개인 시간을 갖는데, 읽을 수 있는 책들 또한 제한되어 있다. 모드가 집 안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강압적이고 가학적이다. 거리낌없이 폭력을 일삼는가 하면 협박을 통해 성폭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드는 이것에 대한 어떠한 거부도 하지 못한다.
집 안의 누구도 모드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집 안의 정원에서 기거하는 동물들만 모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교감하게 된다.
나는 정원에서 쉼 없이 이어지는 새들의 수다를 몰래 귀 기울인다…. 그 순간 나는 창살에 갇혀 지내는 린다를 떠올린다. 린다 역시 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보아도 개들의 합창 중에 린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음악도 대화를 한다. 오른손이 한 악절을 시작하면 왼손이 응답하고, 오른손이 다시 시작하면 왼손이 따라간다.
모드와 소통하는 또 다른 인물들은 책 속의 인물들이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그레고르를 지금의 자신과 자신을 동일화하면서 동시에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고 에드몽 당테스를 자신에 대입하며 이상을 표출하기도 한다. 많은 철학자의 사상을 읽고 그들의 의견을 비평한다.
모드는 빡빡한 스케쥴에서 다양한 지식과 억압 속에서 성장한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몰래 보거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소심한 거짓말부터 시작해서 아버지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는 것까지 조금씩 자아를 키워간다. 그리곤 아버지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우리를 가두어놓은 이 세상 전부가 사실은 탁월한 통찰력이 아니라 은밀한 고통 속에서 나온게 아닐까?
그런 생활속에서 모드는 하나 둘 아버지의 명령에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게 된다. 모드는 남들보다 빠르게 대학 입시를 위해 바칼로리아 시험을 보지만 편협한 지식의 깊이로 인해 번번이 떨어진다. 그러던 중 음악 선생님 물랭 선생님을 만나고 그로 인해 집에서 벗어나 악기상점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6개월 뒤 이혼을 전제로 리샤르 줄리엥과 결혼한다. 그리고 거듭된 설득에 루이도 더 이상 이혼 요구를 하지 않게 된다.
무엇이 완벽한 아이를 만드나?
원제는 ‘그리드를 넘어’ 라는 의미이다. 책의 대부분의 지면에서 집에서 가해졌던 학대에 중점적으로 기술했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내용으로 벗어남 자체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그동안 억압받았던 것에 비해서 쉽게 벗어난 것 같이 느껴져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이 책이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로 바뀌게 된다. 완벽한 아이라는 제목은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아버지 루이가 생각하는 완벽한 아이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세상에 나갈 모든 것이 미리 준비된 사람이다. 굉장히 극단적이고 편협하며 그것을 이루는 과정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자신의 아이는 초인이 되어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모든 면에서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야 한다. 80년대 생인 나에게 이러한 부모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렇게 생소하거나 경악스럽지 않다. (물론 매일 아침 자신이 누는 소변 병을 들게 한다거나 전깃줄을 잡게 한다거나 하는 일 같은 것은 절대 이해할 수 없으며 일어나서는 안 된다.) 모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또는 은밀한 고통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루이는 정작 자신은 무엇도 스스로 하는 것이 없으면서 모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초인으로 만드려 한다. 전체가 아닌 굉장히 단편적인 모습만 봤을때는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드는 굉장한 아이다 (실제로는 나의 부모 세대의 인물이지만 말이다). 모드는 굉장히 비정상적이고 희망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집은 떠나기 전까지 정상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은 세 손가락에도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드는 이를 떨쳐내고 세상에 나왔으며 실제로 법무사를 거쳐 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다. 미쳐버리거나 학대에 길들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성장 환경이었지만, 그를 떨치고 나온 모드는 그녀의 아버지가 원했던 초인은 아니였을지 몰라도 이미 초인 그 자체이다. 결과적으로는 물랭 선생님의 도움이 그녀가 집에서 벗어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되었지만, 그 전에 이미 그녀는 집을 떠날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물랭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어도 언제든 다른 기회를 통해서 집을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회가 전혀 없었다면 모드는 집에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에디슨의 99%의 노력과 1%의 재능의 역설과도 같다.
무엇이 모드를 초인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장 영향이 크다고 믿고 싶은 것은 그녀가 읽었던 도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무엇이 올바르고 틀렸는지에 대한 기준이 되었다. 많은 인물들의 서사가 모드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녀에게 인간성을 부여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또 한편으로는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성향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른이 당해도 어려운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매일 같이 견뎌내고 올바른 사고를 통해서 책을 읽고, 악기를 연주하고, 동물들과 교감한다는 것은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태생적인 능력으로 생각된다. 그 외의 요인들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아쉬운 점은 어머니의 부재와 왜 좀 더 빠르게 아버지를 거부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 루이는 모든 일의 원흉이지만 모드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되려 반대로 그의 잘못된 사랑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잘못된 점을 어머니 자닌이 바로 잡아줄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닌은 그렇게 길러지긴 했으나 외부에서 교육을 받고 온 인물인데 아버지의 잘못된 점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일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고 거동이 불편해져서 인지는 몰라도 모드의 반항이나 생각지 못한 부탁을 거부감 없이 허락하는 것에서 이러한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소설이였다고 한다면 자닌의 심경을 상세하게 기술하지 못한 작가를 원망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아이가 생겼을 때, 그리고 아이와 마찰이 생겼을 때 다시 한번 읽어보면 굉장한 울림으로 다가올 것 같다. 비슷한 의도로 이 책의 제목을 한국에 들여올 때 [완벽한 아이]로 풀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싫든 좋든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강요하게 된다. 그것이 그 부모를 지금의 그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완벽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닌 아이 스스로가 완벽한 아이가 되는 것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 책은 단순히 한 사람의 힘겨웠던 유년기 학대의 서사가 아닌 모든 부모들과 어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도구가 된다.
정리
모드 줄리엥이 부모와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학대로 자란 자신의 유년기를 기술한 자전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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